나침반이 아닌 호흡기로 방향을 잡는 시간

딥사우스다이브클럽 이미지

처음 남태평양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진짜 바다만 보고 움직이겠구나.” 그렇게 시작된 남쪽 바다와의 인연은 단순한 여행 이상의 것이 됐다.

내가 다이빙에 빠진 건 멋진 풍경 때문이 아니었다. 첫 입수에서 맞닥뜨린 건 생각보다 낯선 ‘고요함’이었다. 수면 아래에서는 말 대신 호흡 소리만 남고, 시선은 넓은 수중 풍경에 붙잡혀 마음은 점점 느려진다. 처음엔 그게 답답했는데, 어느 순간 그 정적이 위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이빙이라는 건 단순히 수심을 재고, 생물을 구경하는 게 아니다. 특히 남반구 바다는 북쪽과는 또 다른 밀도와 리듬을 가진다. 수온, 조류, 그리고 바닷속에서 마주치는 생명들의 태도까지 다르다. 인도네시아의 어느 섬에서는 눈앞에서 망가진 산호가 바다 전체 분위기를 바꿔놓는 걸 직접 봤다. 그런 현장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기록의 이유’가 되었다.

다이버들끼리 자주 나누는 대화 주제 중 하나는 “가장 기억에 남는 포인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디’보다 ‘언제’가 먼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피지의 어스름한 오후, 모잠비크의 이른 새벽, 혹은 태즈메이니아에서 거대한 해조류 아래 지나던 그 감각.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는 건, 그만큼 내가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는 의미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공간을 만들었다. 단순한 다이빙 스팟 정리나 장비 정보가 아니라, 바닷속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감각과 현장감, 그리고 다이버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미묘한 감정들을 나누기 위해.
나침반 없이, 호흡기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그 순간의 기억들을 천천히 모아가고 싶다. 그것이 결국 ‘딥사우스’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